프랑스 코트다쥐르의 중심인 니스는 몸과 마음을 한순간에 해방시키고 파도에 모든 것을 맡기고 싶은 도시다. 이곳의 매력은 니스라는 지역 자체뿐만 아니라 평화롭고 서정적인 삶의 진행속도에 있다.
어떻게 말해야 지구상의 작은 천국, 니스의 이미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코트다쥐르의 수도이자 프랑스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 가이드북 첫 줄에 나온 설명 정도로는 한참이나 부족하다. 어디를 가나 사방으로 휴양지의 전형적 분위기를 뿜어내는 곳에 대해 말할 때는 조심스럽다. 그렇게 수십 번을 고민하다 결국 이번에도 아름답고 환상적이라는 표현으로 니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만큼 나는 이 도시에 푹 빠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바다를 보며 몇 분마다 한 번씩 입에서 감탄사가 터졌다. 회색 구름이 가득 몰려와 소나기를 흩뿌릴 때도 니스를 향한 사랑은 변함없었다. 연중 내내 온화하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곳에서 어깨 한쪽이 홀딱 젖도록 비를 맞는 여행자가 몇이나 될까. 니스를 떠나는 길, 렌터카 안에서 마지막으로 본 니스의 활기찬 풍경과 함께 기쁨과 환희로 가득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다행이었나, 나는 아쉬운 마음에 거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니스를 생각하면 푸른 바다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대영제국을 이끈 빅토리아 여왕도 이곳을 최고의 ‘휴양지’라 불렀으니. 뜻밖에도 니스는 40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산 흔적이 있고,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몸집을 키운 유서 깊은 도시이다. 바다 뒤에는 그리스인에 의해 세워지고, 로마시대를 거쳐 발전한 도시의 일면이 펼쳐진다. 모든 오래된 도시가 그러하듯 니스 안에는 구시가와 신시가가 사이좋게 맞닿아 있다.
니스에서 머문다면 해안가의 호텔 또는 역 근처 중에 선택하는 것이 보통. 나는 숙소가 있는 기차역 근처에서 출발해 장 메드상 거리Avenue Jean Médecin를 따라 시내 산책에 나섰다. 세계적인 브랜드가 모여 있고 트램이 다니는 이 거리는 신시가지의 중심이다. 역에서부터 남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마세나 광장PlaceMasséna이 등장한다. 이 마세나 광장을 기점으로 구시가와 신시가가 나뉜다. 구시가의 입구는 이전까지의 풍경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이 길을 지나면 니스의 심장부인 아름다운 구시가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해변만큼이나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구시가는 니스 사람들의 리얼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빅토리아 여왕이 직접 초콜릿을 사러 온 메종 아위에르Masion Aure와 오페라 극장을 지나면 노천시장이 눈에 띈다. 시장이 있는 살레야 광장Cours Saleya은 구시가에서 가장 분주한 공간이다. 시장에 들어서면 음식 냄새보다 공기를 타고 기분 좋은 꽃향기가 먼저 마중 나온다. 오전 6시부터 점심 무렵까지 오픈하는 과일 및 채소시장과 오후 5시 넘어 문을 닫는 꽃시장은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는 니스 주민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관광지 한복판에 있는 시장답지 않게 전체적인 상품 가격대가 매우 합리적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꽃시장은 열리며 일요일에는 같은 자리에 골동품 시장이 들어선다. 주말에 니스를 여행하면 두 시장을 모두 만날 수 있다. 꽃시장 탐방에서 나는 니스만의 낭만을 찾았고, 일요일 오전 골동품에 둘러싸여 오래된 물건의 소중한 가치를 아는 사람들을 만났다.
형형색색의 음식과 독특한 식자재가 있는 시장에서 니스 사람들의 음식 취항을 슬쩍 엿볼 수 있었다. 니스의 식탁은 남프랑스의 음식, 프랑스 북부의 음식과 다르다. 바다와 밀접한 까닭에 생선요리가 대다수가 아닐까 추측해봤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로컬의 대답. 니스 주변의 바다는 물살이 빠르고 깊어 주 식재료로 삼을만한 큰 고기를 잡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엔초비처럼 작은 생선을 이용한 요리는 쉽게 볼 수 있지만, 메인 요리에 사용되는 생선은 대다수가 유럽 각지에서 수입해온 것이란다.
세계 3대 요리의 고장이라 불리는 프랑스. 전형적인 프랑스 요리를 기대한 사람에게 니스의 요리는 때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있는 그대로 살린 것. 니스의 음식만큼은 무엇을 입안에 넣어주든 주재료를 맞출 수 있겠더라. 맛있거나 맛없는, 딱 두 느낌으로 세상의 음식을 판가름하던 내게 니스 음식은 참 독특하고 인상 깊었다.
그런데, 내가 모르던 한 가지가 있었다. 실은 니스 사람들이 니스 음식에 대해 굉장히 자부심이 강하다는 사실 말이다. 니스 관광 안내 사무소는 정통 니스 요리뿐만 아니라 역사와 독특한 요리법 홍보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Cuisine Nissarde’라는 인증라벨을 만들었다. 이 라벨을 내건 식당에 가면 이곳 사람들이 사랑하는 니스 스타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누구나 걷고 싶은 해안 산책로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길은 파리의 샹젤리제이다. 그렇다면 2위는 어디일까. 정답은 니스의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enade des Anglais다. 온화한 기후와 만난 지중해 코발트빛 바다는 빅토리아 여왕을 비롯한 영국인을 니스로 끌어당겼다. 특히 해안가를 따라 아름답게 이어진 길은 겨울 추위를 피해 이곳에 온 영국인들을 완벽히 매료시켰다. 약 150년 후, 현재 이 길은 영국인의 산책로라는 뜻의 프롬나드 데 장글레로 불리고 있다. 7킬로미터 이르는 산책로는 니스의 대표적인 길이자 조깅, 산책, 자전거 등을 즐기는 니스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장소다.
한여름이 되면 이 길과 이어진 해변은 발 디딜 틈이 없다. 15개 프라이빗 비치와 20개 퍼블릭 비치는 비키니 톱을 벗어던진 토플리스 부대, 여행자 그리고 니스 주민으로 가득 찬다. 2016년 7월 프랑스 혁명 기념일, 프롬나드 데 장글레에서 큰 인명피해를 낸 트럭 테러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믿기 힘들만큼 참혹했고 전 세계가 슬픔에 잠겼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오늘날, 이 길은 다시 활기찬 분위기로 해안도시 특유의 아름다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정오까지 나는 이 길을 걸으며 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들과 함께 남프랑스의 새로운 풍경에 한없이 감격했다. 영국인의 산책로라 불리는 길은 이제 모두를 위한 사랑스러운 산책로가 됐다.
프롬나드 데 장글레와 니스의 구시가지가 어우러진 모습을 한눈에 볼 방법은 콜린 성La Colline Du Château에 오르는 것이다. 캐슬 힐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그리스인이 이 땅에 왔을 때 최초로 터를 잡은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과거에 성이 있던 언덕에는 근사한 공원이 자리한다. 훌륭한 전망대 겸 산책코스인 캐슬 힐까지는 계단을 이용해도 좋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숨에 올라가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언덕 끝자락에 도착하는 순간 코트다쥐르의 사파이어빛 바다와 아름다운 도시의 전경을 한 폭의 그림 속에 담을 수 있다.
마세나 광장에서 넘어와 시장이 끝나는 부분까지 걸어가면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가 살며 작업했던 낡은 맨션이 등장한다. 그는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1차 세계대전 이후 니스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그가 지냈던 맨션은 개인 소유로 입장이 불가능하지만 시미에 지구에 마티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미술관Musée Matisse이 있어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시미에 지구에는 현대미술계의 또 다른 거장,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작품을 전시한 샤갈 미술관MuséeNational Marc Chagall도 있다. 마티스와 피카소처럼 코트다쥐르의 오랜 주민인 샤갈은 20세기 유럽 미술계에서 진보적인 흐름을 이끈 인물로 유명하다. 샤갈 미술관에서 만나는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예술적으로 강렬한 느낌을 준다. 특히 화려한 원색으로 벽 한쪽면을 가득 메운 <성경의 메시지> 연작은 미술관을 뒤로하고도 한참이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미술관 내 샤갈의 그림들은 모두 샤갈이 프랑스 정부에 기증한 것들. 더불어 샤갈이 직접 건축 과정에 참여한 대담한 구조의 미술관과 그의 안목으로 이룬 정원에도 눈길이 간다. 유럽여행을 할 때면 늘 유럽 사람들이 부러웠더랬다. 세기를 놀라게 한 화가들의 작품을 친구 집 놀러 가듯, 가볍게 미술관에 들러 만날 수 있으니. 니스에는 수많은 소형 아틀리에와 20여 개가 넘는 박물관 및 대형 갤러리가 있다.
이곳을 유람하는 시간은 예술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폭넓게 확장시킨다. 고맙게도 이 무한한 매력의 팔레트 같은 도시는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발걸음을 언제든 기다려줄 것이다.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는 니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겨울에도 장미가 피며 사람들은 항상 시끄러울 정도로 명랑하다. 많이 웃는 사람들에게서 사람 향기가 물씬 나는 천국이다.” 니스는 중세시대 알프스 산맥 서부에 터를 잡은 사보이 왕가의 지배를 받았다. 간혹 니스가 이탈리아의 지역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탈리아가 통합한 것은 1861년, 니스는 그보다 1년 전인 1860년에 프랑스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런 오해를 사는 이유가 있다.
프랑스 모든 지역을 통틀어 이탈리아 문화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 바로 니스이기 때문. 음식을 시작으로 삶의 다양한 모습들에서 이탈리아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진다. 특히 니스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정열적인 이탈리아 사람들의 피가 그들에게도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리에는 파리지앵이 있고 뉴욕에는 뉴요커가 있다. 니스에서는 니스 사람을 일컬어 니수아Les niçois라 한다. 니수아는 자신이 니스 사람이며 니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코트다쥐르의 다른 도시나 마을보다 문화생활을 향유할 기회가 많고, 훌륭한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것에 비해 생활 물가는 꽤 합리적이예요. 게다가 공항과 큰 역이 도시 안에 있어 프랑스 및 세계 어디로든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장점이죠. 아, 언제든 환상적인 지중해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행복하고요.”
그들이 굳이 여러 번 자랑하기 전에도 난 이미 며칠 만에 니수아가 이곳을 사랑하는 수십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니수아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니수아는 니스어 딱 한 문장을 기억하라 말했다. 현재 니스어는 니스 내에서도 네다섯 개 학교에서만 가르치는 죽은 언어이지만, 이 문장만큼은 모든 니수아가 알고 좋아한다는 사실도 함께 덧붙였다. 멍바티, 씨유 니싸르M’en bati, sieu Nissart. 직역하면 ‘나는 상관없어, 나는 니스 출신이니까’다. 진지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웃음이 터졌다. 이렇게나 쿨하고 자기중심적인 말이 니스어 중 가장 유명하다니. 과연, 세상 참 편하게 사는 니수아로다. 그리고 근심과 걱정을 달고 사는 내게는 지독히도 부러운 삶의 방식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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