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쥔 시간은 2박 3일. 해외여행을 고려하기엔 짧기만 하다. 하지만 떠남을 주저할 이유는 없다. 타이완, 이토록 만족스러운 데스티네이션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일상의 쳇바퀴를 ‘잠시만’ 멈추고, 방관자의 입장에서 현재와 무관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흔히 말하는 휴식이 필요한, 즉 떠나면 좋을 때다. 이 타이밍에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이 바로 해외여행이다. 하지만 일탈을 꿈꾸면서도 망설임이 앞선다. 벗어나고 싶지만 깨어지면 안 될 것 같은 루틴! 특히 여분의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에는 더욱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고민하지 말기로 하자. 2박 3일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지가 있다. 절대 자연과 도시풍경, 고전과 모던의 조화, 그리고 로컬들의 순수한 문화까지 짧아도 굵게 경험할 수 있는, 바로 타이완이다. 여기 시간의 흐름과 옮겨 다닌 장소에 맞춰 구성한 2박 3일간의 일정이 있다. 물론 아침 이른 시간의 출국과 저녁 늦은 시간의 귀국이라는 전제가 따르기는 하지만!
타이페이의 관문인 ‘타오위안桃園’ 국제공항에 도착해 캐리어를 끌고 나와도 여전히 오전과 오후의 경계를 달리는 시간. 이른 시간대의 비행기에 탑승한 것, 하늘길로 고작 2시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가 주는 장점이다. 목적지인 ‘타이페이 역’으로 가기 위해 공항과 바로 연결된 MRT역으로 향했다. 올해 3월 개통된 공항철도다. ‘급행’을 타면 타이페이 역까지 35분 소요. 리무진 버스와 비교해 뚜렷하게 빨라진 시간과 비례해 마음도 부쩍 가벼워진다.
타이페이 역에서 다시 고속열차HSR에 몸과 짐을 싣고, 타이중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버스로 이동하여 최종 목적지에 발 도장을 찍었다. 순간 바다와 같은 물결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타이완에서 가장 큰 호수인 ‘르웨탄(日月潭)’이다. 우리 식의 한문 발음으로는 ‘일월담’. 해와 달의 호수라는 의미다. 동그란 모양과 초승달 모양의 호수 2개가 연결된 모습이 해와 달을 닮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호수를 둘러싼 산과 에메랄드 물색의 어우러짐, 구름처럼 주위를 뒤덮는 안개가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타이완 사람들이 절대 비경으로 사랑해 마지않는 이유다. 짧은 체류일정, 복잡해 보이는 과정과 시간을 들여서 찾은 데는 이와 같은 명성이 한몫했다. 이런 자연과 더불어 ‘진짜’ 휴식을 즐기고 싶었다.
자전거로 둘러 본 르웨탄, 그리고 일월담 문무묘
24Km나 되는 둘레를 가진 르웨탄이다. 시간이 부족한 여행자의 입장에서 이 거대한 호수를 모두 돌아보는 것은 그래서 무리다. 하지만 호수 일부라도 볼 요량이라면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유람선에 오르거나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과감하게 걷기에 도전하는 것 등이다. 그중 가장 효율적인 선택은 자전거다. 호반을 따라 길게 뻗은 자전거 도로는 ‘세계 10대 아름다운 자전거길’로 선정될 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정비도 잘 되어 있어 서툰 실력으로도 도전해 볼 만하다. 호수 주변의 대여 가게에서 전동 자전거를 빌려 나선 길, 적은 힘으로도 페달은 기분 좋게 돌아갔다. 그에 맞춰 새로운 풍경이 순간순간 선물처럼 안겨온다.
삐걱대는 나무 선착장, 낚시에 몰두 중인 중년의 강태공들, 연인의 어깨에 고개를 대고 서 있는 처자, 애써 중심을 잡고 가는 먼발치의 자전거 행렬, 그리고 발색 좋은 꽃과 나무들. 이 모든 정경이 르웨탄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것만 같아 미소가 나온다. 760m의 산정에 있는 호수답게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도 빼놓을 수 없다. 적당한 장소에 자전거를 세우고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때마침 찾아온 부슬거리는 비와 뿌연 구름이 소문의 에메랄드 물색을 평범 이하로 변신시켰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순수한 자연, 그리고 자전거 라이딩이 준 긍정적인 효과일 테다.
르웨탄 셔틀버스를 타면 입구까지 바로 닿게 되는 ‘문무묘-문무먀오-文武廟’. 문과 무로 이름을 떨친 중국의 역대 인사들을 기리고 있는 사당이다. 공자, 관우를 비롯해 송나라의 명장 악비, 공자의 72인의 제자 등 그 면면이 너무 화려해, 서로 시샘하고 다투지는 않을는지 걱정이 들 정도다. 완만한 계단 길을 올라가면 닿는 경내는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며 화려한 색채와 장식으로 번쩍거린다. 또한, 타이완 사람들이 걸어 둔 금박의 소원 걸이도 볼거리를 더한다. 여행자들에겐 특히 전망 좋은 명소로 유명하다.
좋지 않은 날씨 탓에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대성전의 전망대에서 감상하는 르웨탄의 일몰은 황홀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밤이 오면 르웨탄의 중심부에 위치한 상점가를 걷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기념품과 먹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늘어 서 있어, 간단한 쇼핑과 허기를 달래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인들의 넉넉한 마음. 유명관광지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얄팍한 상술과는 거리가 먼 푸근함은 취두부의 독한 향처럼 내내 마음에서 맴돌았다.
가벼운 산책으로 맞이한 르웨탄의 아침, 맑은 공기에 배어있는 비릿한 물 내음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향한 곳은 구족문화촌九族文化村이다. 로프웨이를 타고 이동해 닿는 이곳은 타이완 최대의 원주민 테마파크다. 본래 16개의 종족을 가진 타이완 원주민, 그 가운데 9개 종족의 전통 마을과 문화를 여기서 만날 수 있다. 구족 문화촌이라는 이름도 그래서 생겼다. ‘타이완 최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부지는 대단히 넓다. 꼼꼼히 둘러 보자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갈 정도다. 그래서 시간에 쫓기는 여행자에겐 취사선택이 필수. 마침 시작한 ‘아메이족阿美族’의 전통공연을 감상하고, 빠른 걸음으로 몇 개의 원주민 마을을 부지런히 돈 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로프웨이에 다시 올랐다.
“일본사람?” 맞은 편에 앉은 중년의 부인이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국인이라고 대답하니 반색을 하며 환한 웃음을 보내 온다. 딸이 한국에서 유학했고, 지금은 타이페이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그리고 옆에 있는 아들을 가리키며 “이 아이도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보낼 예정이지요. 우린 한국이라는 나라, 정말 좋아해요”라고 덧붙이며 다시 한번 환하게 웃어주는 그녀. 르웨탄, 그리고 구족문화촌이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타이페이로 돌아와서 호텔에 체크인한 후, ‘보피리아오’를 찾았다. 100여 년 전의 청나라 거리를 재현해 놓은 역사 거리다. 붉은 벽돌을 뼈대로 한 건물들, 헐거워진 외벽, 그리고 의미를 짐작하기 힘든 그림들, 과연 거리의 모든 것은 클래식하다. 그렇기에 이곳을 걷다 보면 예전으로 타임슬립한 기분이 든다. 아담한 규모지만 영화의 촬영지로, 사진가들의 출사지로 사랑 받는 이유도 그래서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마음은 급해진다. 짧은 일정의 마지막 밤이기 때문이다. 야시장을 찾아 나서기, ‘타이페이 101’빌딩에서 야경에 빠져보기, 최근 힙한 카페 탐방하기, 혹은 노천 바에서 타이완 맥주를 홀짝거리기. 무엇을 선택해도 좋다. 분명한 것은, 화려하진 않지만 해볼 만한 것이 넘치는 타이페이의 밤이다.
귀국 전에 들른 타이페이 근교의 명소
지우펀九份과 스펀十份. 타이페이 근교의 두 명소를 바라고 떠나는 걸음은, 귀국을 앞둔 탓에 이른 새벽부터 급하다. 서둘러 숙소의 체크아웃을 마치고 먼저 들른 ‘지우펀九份’, 입구는 이른 시간임에도 예상한 것처럼 인파로 북적거린다. 지옥펀이라는 농담이 장난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과거에는 거짓말처럼 외진 산골이었다. 단지 아홉 가구만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주민들은 필요한 것을 공동 구입하고, 공평하게 아홉 개로 나눴다고 한다. 지우펀, 우리말로는 구분九份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사연이다. 이 동네가 술렁이기 시작한 건 마을에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다.
1890년경의 일이다. 골드러시로 호황을 맞은 마을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금맥이 마르며 다시 조용한 산촌의 모습을 찾았다. 관광 마을로 유명해지기 까지는 말이다. 지우펀의 여정은 먹거리 골목인 '지산제基山街'로부터 시작된다. 언제나 수많은 사람으로 꼬리를 무는 좁은 길은 오가기에 적지 않은 인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동네를 대표하는 음식들을 경험해 가며 옮기는 걸음이 그리 지루하지는 않다. 한동안 사람에 떠밀리듯 움직이다 만나게 되는 사거리가 무척이나 반갑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나오는 '수치루豎崎路' 때문이다. 지산제 못지 않게 사람들로 붐비는 비탈진 계단이지만, 지우펀 여행의 하이라이트와 같다.
영화 '비정성시'가 바로 이 길을 배경으로 촬영되었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영감을 준 건물 '아메이차주관阿妹茶樓'도 여기서 모습을 드러낸다. 수많은 등불로 빛나는 밤이 되면 이 길의 낭만은 절정을 달린다. 지우펀을 떠나 자동차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다 보면 나오는 곳이 ‘스펀’이다. 이곳에선 삼삼오오 철로에 모인 사람들이 거대한 등을 하늘로 날리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 등을 천등이라고 부른다.
동참하여 ‘천등’을 날려 볼 요량으로 천등을 만드는 장인을 찾았다. 그곳에서 배운 제작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색이 들어간 네 장의 종이를 겹친 후, 풀로 맞붙인다. 각각의 색지色紙는 등의 네 면을 이루게 되는 뼈대로 테마를 가지고 있다. 예들 들어 황색은 재물, 남색은 지혜를 상징하는 식이다. 주제에 맞는 소원을 색종이마다 큼직하게 적어 넣고 흰색 종이를 등의 머리 부분에 접착한다. 네 면을 고정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만들어진 천등의 내부에는 기름을 바른 종이를 걸어둔다. 불을 붙여 하늘로 날려 보내기 위해서다. 열기구와 같은 원리다.
삼국시대 촉의 승상이었던 제갈공명이 고안한 방식이다. 그래서 때로는 ‘공명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인의 지도로 직접 만든 천등을 들고 철로에 섰다. 높이 오를수록, 오래 떠 있을수록 소원이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는 귀띔이다. 기름종이에 불을 붙인 후, 구호에 맞춰 천등을 하늘로 올려보냈다. 함께 올라간 누구의 것보다 높게 그리고 멀리 날아가는 천등,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원이 벌써 이루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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