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땅이다.
고대 유적지 견학에 대한 갈망이 없더라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페르시아의 옛 전통과 문화는 아직도 살아있다. 90년대 중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국내 상영으로 이란에 대한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때 처음 방문했던 이란을 20년만에 다시 찾았다. 변한 게 많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변하지 않은 게 더 많았던 나라 이란.
여전히 친밀하게 다가오며 적극적인 호기심을 드러내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그다지 부담스럽지만은 않았다.
이란은 여전히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이다. 이란이 여행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90년대 중반부터인 것 같다. 당시 여성여행가인 한비야씨가 쓴 여행에세이를 통해 이란 여행에서의 그녀의 무용담이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되어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중동의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를 여성 홀로 여행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란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한국이 IMF의 금융제재를 받고 있던 때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너무도 여행이 하고 싶어(아니 사실 이란이란 나라가 너무도 가보고 싶어) 당시 미화 1달러에 1800원이란 어마어마한 환율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감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난 젊었던 만큼 무모 했기에 이란 여행에 대한 정보를 여기저기서 긁어 모았다.
그때는 인터넷이 활발하게 사용되기 이전인 데에다 이란을 여행으로 다녀온 사람도 거의 없었기에 대부분의 정보를 론리플래닛 여행가이드북 <이란>편의 영문 정보에 의존해야만 했다.(당시 한국여행자들 중에서는 이란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극히 일부였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90년대 한 TV프로그램의 활약으로 코미디언의 세계여행이 이슈가 된 후 적지 않은 여행자들이 실크로드 루트를 따라 인도-파키스탄-이란-터키 루트를 오가며 여행을 하고 있었다. 당시 나 역시 적지 않은 일본 여행자들을 이란에서 만나기도 했다)
당시 이란대사관에서 이란 비자를 받고 한국에서 인도를 왕복하는 항공권을 저렴하게 구입했다. 그 때 한국에서 이란까지 가는 항공권은 엄청 비쌌다. 이란 여행에 인도를 넣은 이유는 인도의 물가가 싼 데에다 당시 나는 인도를 가본 적이 없었기에 이란 여행과 함께 인도를 넣은 것이다.
그래서 나의 이란 여행은 인도-파키스탄을 거쳐 육로로 이란을 들어가는 고달픈 여정으로 시작되었다. 이란으로 가는 여정에서 파키스탄의 라호르에서 퀘타까지 28시간동안 완행열차의 삼등칸에 몸을 싣고 달렸던 기억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렇게 힘들게 들어갔던 이란은 나에게 인도, 파키스탄과는 다른 신비의 나라로 다가왔다. 일단 인도, 파키스탄에 비해 도로 시설이 훌륭했다. 장거리 대형버스도 안락했다. 물가도 아주 저렴했다. 사람들은 친절해 내가 길을 걸을 때마다 어디서 왔냐? 이름은 뭐냐? 라고 즐겨 묻곤 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었다.
20년이 흐른 뒤 다시 이란을 방문했다. 테헤란은 변해 있는 듯 보였다. 시내 중심가는 더욱 자동차와 인파로 북적이고 크고 작은 고층건물이 들어선 모습도 제법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지방 도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이 나라는 시간이 정지해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여성들의 옷차림에 있어서는 그 동안 세월의 흐름에 따라 좀 더 자유스럽고 개방된 모습을 조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시커먼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의 모습만을 보았던 20년전과 달리 테헤란에서는 적어도 서구적인 옷 차림새를 하고 머리 위에 멋쟁이 스카프를 살짝 얹은 형태의 과감한 패셔니스타들이 거리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젊은 남성들의 옷차림도 예외는 아니었다. 좀 논다는 친구들의 헤어스타일, 패션스타일을 보면 서구의 젊은이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20년전 이란을 여행을 하다 만났던 젊은 현지 커플의 모습이 생각났다. 시외버스 안에서 만났던 이 커플은 결혼한 지 얼마 안되었던 젊은 부부로 결혼 전 스웨덴에서 살던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내 앞에서 스웨덴에서의 삶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그들이 그리워했던 삶은 자유분방한 삶이었다.)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당시 이란정부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슬람을 삶의 교리로 국민들의 자유와 개성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나 있는 부류였다. 그들은 1979년 호메이니가 일으켰던 혁명이전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 이전이란 팔레비 왕의 통치 시절을 말한다. (참고로 1979년 일어난 이란 혁명은 호메이니 등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주동하여 일으킨 팔레비 왕조 타파 운동이었다. 팔레비 왕가를 독재권력집단으로 규정하여 이를 반대하고 이슬람법에 반하는 서구문화의 유입을 차단하고 이슬람종교지도자가 정치적 권력을 갖는 신정일치 체제를 확립하는 혁명이었다.)
팔레비 왕은 서구문물을 이란에 들여온 인물로 70년대 혁명 이전만 해도 이란 여성들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고 미국에서 유행하던 헤어스타일을 하는 여성들이 거리에 즐비했다고 한다. (나는 구글 이미지에서 70년대의 이란 모습을 검색해보고 짧은 스커트에 다리를 다 내놓고 있는 자유분방한 이란의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고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 담겨 있던 것이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70년대 팔레비 정권하에 살던 이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전혀 상상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20년전 내가 만났던 그 커플처럼 여전히 팔레비 왕 시대의 서구적이고 개방적인 사회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 한가지 놀랬던 점은 이란을 20년만에 다시 방문했을 때 테헤란에는 종교성이 없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점이었다.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건네며 호기심을 보인 젊은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들에게 이슬람이나 무슬림은 그냥 형식적인 것, 국가가 강요하는 종교적 이념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 난 무슬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철저한 이슬람 사회 국가라고 생각했던 이 나라에서 무슬림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자 나 스스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란은 165만 평방킬로미터의 면적을 지닌 나라로 면적만으로는 세계 18위 해당하는 큰 나라이다. 면적이 큰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와 교통망이 잘 확충되어있어 상대적으로 중동이나 서남아시아의 국가들과 비교해볼 때 여행자들에게는 제법 여행이 편리하게 느껴진다.
이란은 1935년까지 페르시아라고 불리던 나라이다. (현재 이란의 정식명칭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 때 이 나라의 위세는 실로 대단했었다. 당시의 역사적 위상이나 관련 유물, 유적은 테헤란의 주요 박물관이나 페르세폴리스, 종가잠빌 등의 유적지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또한 런던의 대영박물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아트 뮤지엄 등지에 고대 페르시아의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유물이나 작품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테헤란은 이란의 수도로 이란의 전체인구 7900만 명 중에 약 7분의 1인 1100명이 모여 사는 도시이다. 상대적으로 테헤란은 에스파한, 시라즈 등 다른 도시에 비해 역사가 짧고 오래된 옛 건물도 적다. 상대적으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건물이 많고 도심 공해가 심해 거리를 거닐 때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란 여행에서 테헤란을 방문하지 않고 이란을 보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테헤란은 현재의 이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테헤란은 이란의 도시 중 유일하게 지하철이 운행되는 도시이다. 게다가 다른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서구의 현대문명의 이기를 조금 맛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테헤란에서는 서구식 레스토랑도 찾아볼 수 있으며 서구식 형태의 쇼핑몰이나 카페, 아트 갤러리도 찾아볼 수 있다.
겉보기에 세속적인 곳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헤란에서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곳이 있다. 바로 골레스탄 궁전Golestan Palace이다. 테헤란에서 단 한군데의 관광명소를 가야한다면 추천해 주고 싶은 곳이 바로 골레스탄 궁전이다. 거대한 단지로 이루어진 이곳은 여러 개의 건물과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이전에 이곳에 사파비드 시대의 요새가 세워져 있었지만 오늘날 볼 수 있는 거대한 궁전 단지를 조성한 것은 19세기말 페르시아의 통치자였던 바로 콰자르 왕조의 나세르 알 딘 왕이다. 당시 콰자르 왕조 시대의 이 궁전 단지는 규모가 더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팔레비 왕조 시대에 들어와서 일부 건물들이 이전되어 전체 규모가 축소되었다고 한다.
골레스탄 궁전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곳은 바로 이반 타크테 마르마르Ivan-e Takht-e Marmar라고 불리는 오디언스 홀이다. 골레스탄 궁전의 모든 공간이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지만 이곳은 특히 모자이크 문양과 전통기법의 장식문양으로 벽면 전체가 치장되어 있다.
특히 이곳에는 야즈드 인근의 광산에서 캐 온 노란설화석고를 깎아 만든 왕좌가 중앙에 놓여있는데, 왕좌를 받치고 있는 작은 사람모형의 석고상의 모습이 독특하다. 페르시아의 역대 왕들이 이 왕좌에 앉아 신하나 장수들의 보고를 받거나 국정을 논하곤 했다고 한다.
골레스탄 궁전의 여러 방들을 둘러본 뒤 궁전의 작은 건물 지하에 마련된 티하우스에 들어가 보았다. 안에는 시샤라고 불리는 물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몇몇 눈에 띄었지만 대체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비록 내부지만 분위기는 전형적인 이란의 여느 티하우스와 다를 게 없었다. 챠이라고 불리는 차를 주문하자 예쁜 금속찻잔에 차가 한 가득 담겨 나왔다. 각설탕과 함께 말린 대추야자도 함께 탁자 위에 놓였다.
이곳 현지 사람들은 차를 마실 때 각설탕 한 덩어리를 입안에 넣은 다음 차를 한 모금 마신다. 그러면 입안에 있던 각설탕이 뜨거운 차에 의해 녹아버린다. 그런 방식으로 차를 마시면서 각설탕을 여러 개 먹게 된다. 나는 달달한 대추야자와 함께 차를 마시기에 굳이 각설탕을 입에 넣지 않았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이 자꾸 각설탕을 입에 넣어 먹으라고 권유하곤 했다.
테헤란에서 세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카샨이라는 인구 32만 명의 작은 도시가 나타난다. 테헤란과 에스파한을 연결하는 도로 위에 위치한 곳이라 이곳을 들르는 여행자들이 간혹 있지만 에스파한이나 시라즈에 비한다면 방문객이 적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카샨은 이란에서 가장 아름다운 올드타운을 지닌 도시이다.
이곳의 올드타운이 멋진 이유는 다양한 전통 가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카샨의 전통 가옥은 작은 집이라기 보다는 제법 덩치가 큰 대저택이다. 건물 앞에 정원이나 분수대 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카샨의 올드타운은 진흙을 이용해 만든 옛집들이 가득한 데에다 미로처럼 골목이 엉켜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한세기 전쯤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현재 이곳에는 수백 개의 옛 가옥들이 보존되어 있다.
카샨에서 가장 오래된 대저택 중 하나인 카네 아메리하Khan-e Ameriha는 가장 인상적인 전통 건축물로 근래 개보수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이는 곳이다. 원래 이 지방의 부호이자 이 지방의 통치자에 의해 18세기말에 지어진 건물로 이 집이 완성되었을 때 이곳은 페르시아에서 가장 큰 개인집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건물은 7개의 안뜰을 지니고 있다.
안뜰의 연못이 인상적인 카네 보루제르디Khan-e Borujerdi와 내부의 스테인글라스 장식이 화려한카네 타바타베이Khan-e Tabatabei 역시 카샨의 올드타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규모가 큰 대저택이다.
카샨의 올드타운에서 전통 스타일의 대저택을 둘러보았다면 이번에는 올드타운 인근에 자리한 바자르를 구경할 차례. 카샨의 바자르는 다른 도시의 바자르에 비해 규모가 좀 작을 수 있지만 현지인들의 소박한 일상을 엿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추천할 만한 쇼핑 아이템으로는 캐슈넛, 파스타치오 등의 견과류나 살구 등 말린 과일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바자르 내에 있는 티하우스에서 차를 마시며 내부 인테리어를 구경하거나 이곳을 방문한 현지 연인들의 모습을 엿보는 것을 좋아한다. 바자르의 한 켠에서 차를 마시고 있을 때 현지인과 동행하여 바자르를 방문하던 중국 여성여행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카우치서핑Couchsurfing이란 웹사이트를 통해 현지인 집에서 숙박을 무료로 제공받고 바자르 안내도 받는 중이라고 했다. 이란을 여행하다 보니 중국 여행자들을 적지 않게 보게 된다. 유럽이든 미주든 어디나 중국인들이 넘쳐나지만 90년대만 해도 좀처럼 볼 수 없던 중국여행자들을 이란에서 만나게 되니 변하는 세월의 여파가 새삼 느껴졌다.
말레이지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를 베이스로 하는 대표적인 저가항공사인 에어아시아Air Asia는 인천-쿠알라룸푸르, 인천-방콕, 인천-마닐라 등지를 직항운항하며 동북아, 동남아 각지와 서남아, 중동, 오세아니아 등 전세계 90여 군데에 취항하는 항공사이다. 근래 에어아시아는 매일 인천-쿠알라룸푸르-테헤란을 연결하는 저렴한 비용의 항공루트를 선보이고 있다.(참고로 인천-쿠알라룸푸르 구간은 주 4회 운항)
테헤란 국제 공항의 경우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나 지하철이 없다. 따라서 요금이 비싸지만 택시를 타야만 한다. 테헤란 시내 일부는 지하철로 연결되어 있어 비교적 교통이 편리하다. 테헤란에서 카샨으로 가려면 테헤란의 남부에 위치한 조눕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3시간 소요)
Darbe Bagh Residence
전통 양식으로 만든 게스트하우스로 카샨의 올드타운 안에 자리해 있다. 안락하고 조용한 넓은 안뜰에서 차를 마시거나 전통식사를 즐기기에 좋다. 바자르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홈피를 통해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Khan-e Ehsan (Ehsan House)
카샨의 올드타운에 자리한 게스트하우스로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곳이다. 싱글, 더블룸 외에 다인실도 지니고 있다. 일부 여행자들에게 인기 많은 곳 중 하나이다.
테헤란 국제공항에서 도착 비자를 받는 게 가장 수월한 방법이다.(50유로 또는 60달러, 싱글 엔트리, 한달 유효. 사진 또는 기타 서류, 초청장 필요 없음) 육로로 파키스탄이나 터키, 아르메니아 등지에서 이란으로 입국할 경우에는 미리 본인의 여권에 이란 비자를 받아야 한다. 예전에는 터키의 트라브존에 위치한 이란 영사관에서 당일 비자를 쉽게 발급받았는데, 현재 상황이 변한 것 같다. 주한 이란대사관에서는 관광비자 신청시 현지에서의 초청장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란의 화폐 단위는 리알이다. 현지에서는 리알보다 토만이라고 즐겨 부르는데, 이는 리알에서 숫자 0을 뺀 단위이다. 다시 말해 10리알은 1토만이다. 현재 공식환율은 미화1달러가 약 33000리알이다. (1리알은 약 0.03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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