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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진한 커피가 있는 서울의 카페 세 곳 추천


서울 사람들은 카페에서 쉰다.


이 작은 도시 안에 자리한 무수한 카페는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많은 이들의 아늑한 쉼터가 되어준다. 진한 커피 한잔에 서울을 머금은, 커피가 있는 공간 세 곳.


을지로 3가의 숨겨진 보물, 커피 한약방

이름만 한약방, 한약조제는 모른다고 미리 간판에 써뒀다.


커피 한약방이 있던 자리는 조선시대 의약과 서민의 치료를 맡은 혜민서가 있던 곳이다. 혜민서 터인 줄 모르고 커피 한약방이라 이름 붙인 카페이지만, 한약방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름과 인테리어가 마음에 쏙 든다. 고종황제가 커피를 마셨을 법한 곳. 커피 한약방의 분위기가 그렇다.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카페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개화기 조선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곳 가구들은 빈지티한 분위기를 흉내 낸 요즘 제품이 아닌 진짜 오래된 것들이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오랜 세월의 흔적 때문에 카페에 앉아 있는 동안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을지로동 골목에 자리한 이유로 커피 한약방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우연히 이 보물 같은 공간을 발견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그러나 입소문으로 유명세를 타며 낮 시간 카페는 꽤 분주하다. 을지로빌딩에 자리한 1층과 2층, 맞은편 2층까지 모두 커피 한약방의 소유인데, 카운터 맞은편 2층이 특히나화려하다. 최근 이 건물 1층에 혜민서 터의 의미를 살린 양과자점 혜민당이 오픈했다. 같은주인이 운영하므로 혜민당에서도 달콤한 디저트와 함께 커피 한약방의 맛있는 필터커피를맛볼 수 있다.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부모님을 모시고 가면 어르신들 음료는 무료로 제공한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부모님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서울의 고풍스러운 카페다.



서울 풍경을 발아래로 쉼표, 산모퉁이


봄과 부암. 그 이름부터도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봄이면 부암동을 더 자주 찾게 된다.


경복궁역 인근으로 나름의 서울 중심지이지만 부암동 언덕길에 발길이 닿자마자 서울 속 모든소음이 잠시 볼륨을 줄인다. 방문객들 외에는 인적도 드문 골목길을 따라 점점 가빠지는 숨을 고르며 가파른 길을 오르면 한계에 치닫을 때쯤 산모퉁이라는 점잖은 집 한 채를 만나게 된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 등장하며 큰 관심을 산 이 집은 이제 카페로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맞는다.


백악산과 인왕산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내가 산모퉁이를 찾는 이유다. 길 찾느라 땀 뻘뻘 흘렸던 여름날에도, 올라가는 도중 추위도 잊어버린 겨울날에도 결국 1, 2층 테라스에서 이 탁 트인 풍경을 만난 후에는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 내의 경치 좋다는 카페들이 꽤 있지만 이곳처럼 아득한 풍경을 허락하는 곳은 보지 못했다. 낮이면 낮대로 계곡 사이 집들의 색이 알록달록해서, 밤이면 밤대로 산의 어둠과 도시의 빛이 그리는 대비가 아름다워서 멋지다.


시장의 평범한 일상, 성미다방

“오늘은 뭐 잡수려고?”, “커피. 뜨끈하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인은 커피, 설탕, 프림을 넣은 일명 다방커피 한잔을 아저씨에게 건넸다.

그 모습을 빤히 구경하다 냉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냉커피를 만들어주시는 동안 말을 더 붙여보고 싶어 얼마나 오랫동안 커피를 만들었는지 물었다. ‘생활의 달인’에 30년 다방커피 달인으로 출연한 게 2010년이니 꽤 오래됐지, 하신다. 냉커피를 마시며 안쪽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돌 위에 얇은 대나무 돗자리 깔아 놓은 것이 전부인데, 무슨 비밀이 있는 건지 온돌방처럼 따뜻하다. 천오백 원짜리 냉커피 맛은 프랜차이즈 아메리카노나 커피믹스와 비교 불가.

어린 시절 엄마와 할머니가 호호 불어 드시던 것을 한 입만 달라 애타게 조르던 바로 그 맛이다. 광장시장 먹자골목에 자리한 성미다방은 주변 상인들 사이에서 인기다. 주문 전화가 끊이지 않는 까닭에 놀고 있으란 말을 남기고 그녀는 홀연히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주인 없는 다방에 홀로 앉아 마신 커피.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기름에 튀기고 볶은 음식 냄새가 그득한 시장에서 참 좋은 쉼터다. 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커피를 깨끗이 비울동안 성미다방의 사장은 커피, 유자차, 식혜를 올린 낡은 쟁반을 쥐고 총 세 번 시장통을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