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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시는 온천수의 고장, 카를로비 바리


카를로비 바리는 온천으로 유명한 고장이지만 이곳의 온천은 좀 특별하다. 바로 목욕을 위한 온천이 아니라 마시기 위한 온천이기 때문이다. 카를로비 바리는 온천 외에도 아르누보 형태의 건축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구시가를 지닌 곳이다. 카를로비 바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체코 맥주의 본고장인 플젠이 자리해 있다. 이곳에서 브루어리 투어를 통해 체코 맥주의 독특한 맛을 경험해보자.


우아한 도시 카를로비 바리

프라하 위주로 체코를 수 차례 들락날락거렸지만 카를로비 바리는 그 동안 나의 버킷 리스트에는 없었다. 그 존재가치를 몰랐기 때문인데 한마디로 체코 여행의 숨은 진주가 묻혀있었던 셈이었다. 인구 6만 명의 이 작은 도시는 프라하에서 한나절 일정으로 쉽게 방문할 수 있었다. 아마도 카를로비 바리는 온천수로 유명한 곳이지만 나에게는 도시 자체가 매우 아름다운 이미지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우아한 고건물에서 풍기는 자태가 그러했고 도심 속에 운하가 들어선 모습도 예쁘장한 구시가의 풍채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오흐르제Ohře 강과 테플레Teplé 강이 흐르고, 산과 언덕으로 둘러싸인 독특한 지형은 단연코 돋보였다. 그 아래 화려한 건축물이 들어서 있고 아기자기한 거리 모습이 아름다워 여성 여행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아 보였다.



게다가 테플레 강 주변에 놓인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콜로네이드 다섯 군데는 도시의 미관을 더욱 화려하게 해주고 있었다. 이 콜로네이드 주변에는 12군데의 마시는 온천장이 자리해 있었다. 카를로비 바리는 유럽에서 가장 여성적인 도시가 아닐까 싶다. 여성적인 도시의 이미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겠지만 필자가 이곳에 와서 느낀 이 도시에 대한 감성은 그야말로 우아함이 풍겨 나오는 도시라는 점! 카를로비 바리야 말로 모든 예술적 감성을 끌어들일 것 같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라젠스케포하르라 물리는 물컵


무엇보다 이곳에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마시는 온천수가 솟아나고 있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저마다 물컵을 하나씩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오는 온천수를 받아먹고 있었다. 미용에 효능이 있다는 입소문 때문일까? 온천수를 마시는 이들은 남성보다 여성들이 더 많았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방문했기 때문이었는지 이 도시의 속살을 들여다보자마자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중부유럽 도시의 또 다른 매력을 놀라우리만큼 엿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가장 큰 매력은 도심 곳곳에 온천수가 수도꼭지를 통해 흘러나오는 모습이었다. ‘그게 뭐 대수냐?’라고 고개를 설레는 이들도 있겠지만 저마다 특이하게 생긴 물컵spa cup을 들고 줄을 서서 온천수를 받아 마시는 모습은 나의 기대와 상상을 넘어서기에 충분했다. 한번에 기억하기에 그 이름도 어려운 라젠스케포하르LázenskéPohár. 이 기이하게 생긴 물컵의 이름이다. 도자기로 만든 것으로 카를로비 바리 방문객에게는 필수품인 이 물컵을 가는 곳마다 지참해야 한다. 수영장에 가는 사람이 자신의 수영복을 챙겨가는 것처럼 말이다. 라젠스케포하르는 방문객들에게 필수 쇼핑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 모양새가 독특한 대에다 세라믹으로 만든 컵의 겉면에 아기자기한 전통문양이 그려져 있어서이다. 각자 자신만의 물컵에 온천수를 받아먹어야 온천수의 효능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 있지만 아마도 장삿꾼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카를로비 바리의 온천수는 공짜다. 아무리 배불리 마셔도 누가 뭐라하는 사람이 없다. 물은 나트륨 성분이 들어있어 약간 짭짤한 데, 중탄산염, 아황산염 등 미네랄이 풍부하다고 한다. 정제한 뒤 소금기가 조금 남아있는 바닷물을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지라도 몸에 좋다니 일단 몇 모금 마셔두는 게 좋다. 특히 이 온천수를 많이 마시면 만성 변비와 비만증, 동맥경화증 등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온 이가 한두 명이 아니다. 또 온천수로 목욕을 하면 류머티즘, 관절염, 만성피부병 등의 치료에도 좋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 몸을 누일만한 온천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도시에는 유일하게 칼스바드 플라자 호텔Carlsbad Plaza Hotel만이 호텔 내에 온천수로 이루어진 고급 스파가 있을 뿐이다. 마시는 온천수로 잘 알려진 곳이라 외국방문객들의 행렬이 적지않다. 특히 독일 국경과 가까워 이곳을 찾는 나이든 단체 독일 여행객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어느 곳이나 단체로 몰려있는 나이든 관광객들은 시끄럽기 마련인데, 이들의 모습에선 점잖음과 올곧은 매너가 엿보였다. 맥주를 그 자리에서 여러 컵 마시는 독일인은 여러 번 보았지만 이곳에서 한 컵, 저곳에서 한 컵을 들이키며 볼록한 배를 내미는 독일 단체 관광객들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냥개로 인해 발견된 온천


카를로비 바리는 원래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이 자리한 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카를 4세가 사냥을 하던 중 사냥개 한 마리가 물에 빠지면서 이곳의 온천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그전부터 이곳은 온천장으로 유명했지만 1358년 카를 황제가 이곳의 온천 중 가장 큰 곳 옆에 자신의 사냥을 위한 로지(숙소의 형태)를 만들었다.

그 이후에 이곳을 사람들은 ‘카를의 온천’이라 불렀고,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카를로비 바리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독일어로는 칼스바드karlsbad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 처음으로 스파가 생긴 것은 1522년이다. 그 후 유럽의 귀족과 왕족들이 이곳을 찾아오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는 1711년과 1712년 이곳을 방문한 러시아 황제인 표트르 대제도 있었다. 이곳에는 예술가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는데, 괴테는 무려 13번이나 이곳을 찾아왔다고 한다. 아마도 그는 이곳 온천수의 효험을 굳세게 믿었나 보다. 음악가로는 바흐, 베토벤, 브람스, 바그너, 차이콥스키, 슈만, 리스트 등이 이곳을 방문했다고 하니 그들의 음악적 감성을 두드렸을 이곳의 도시적 아름다움은 굳이 과장하지 않더라도 알 만하다. 이 도시를 가득 메운 건축물은 대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세운 것들로 네오 스타일과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체코 맥주의 생산과정을 엿보는 브루어리 투어


카를로비 바리 방문을 마치고 프라하로 돌아가기 전에 잠깐 시간을 내어 플젠을 방문했다. 이 두 도시를 오가는 버스가 마침 있어 얼른 탑승했다. 플젠까지 가는데 약 1시간40분 정도 걸렸다. 프라하를 거쳐 가는 것보단 시간이 절약되었다. 플젠을 방문하는 이유는 체코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이곳의 맥주 양조 공장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플젠은 무엇보다 체코의 대표적인 맥주인 필즈너 우르켈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플젠은 프라하에서 서쪽으로 약 90km 떨어진 곳에 자리해있다.

보헤미아 서부 지방의 작은 도시인 플젠은 언뜻 보면 평범한 동유럽의 도시 같아 보였다. 하지만 이 도시를 찾는 대부분 방문객들의 첫번째 방문 이유는 바로 이곳에 자리한 맥주 공장을 견학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한 여름철이 아닌 비수기여서 그런지 다행히 방문객을 상대로 하는 브루어리 투어brewery tour를 예약 없이 참가할 수 있었다. 견학 투어에 참관해 보니 브루어리 투어는 매일 영어와 체코어로 나뉘어 서너 차례 진행되고 있었다. 전체 소요시간이 약 두 시간일 정도로 꼼꼼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참고로 공장 내에는 대규모 체코 전통 요리 레스토랑이 마련되어 있어 이곳에서 생산되는 맥주와 함께 식사도 즐길 수 있다. 투어가 시작되자 맨 처음 자동화기기를 통해 병과 캔에 맥주를 담는 현대식 시설물을 둘러보았다. 그 다음 1842년 처음으로 생산된 필즈너 우르켈의 역사를 보여주는 비디오 상영을 관람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몰트와 홉을 섞어 맥주를 만드는 대형 구리 컨테이너였다. 대형 컨테이너가 구리 재질로 만들어진 이유는 구리가 전기와 열의 전도성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몰트와 홉을 섞는 데 유리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맥주를 보관하는 지하통로를 방문했다. 맥주를 보관하는 방식은 철저히 전통방식을 따르고 있었다.


낮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지하에 터널식 통로를 만들고 그곳에 맥주를 보관하는 것이었다. 참나무 통에 보관된 필즈너 우르켈을 유리잔에 담아 한 모금 마셔보니 뼈 속까지 시원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참나무의 그윽한 향이 맥주 한 모금에 전달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평소 맥주를 즐겨 마시지 않는 나로서도 맥주의 깊이 있는 진한 맛을 음미하던 순간이었다.


여행팁

1. 가는 길

*카를로비 바리
카를로비 바리는 프라하에서 서쪽으로 약 145km 떨어져 있다. 프라하에서 버스로 2시간15분 거리이기에 반나절이나 하루 일정으로 방문할 수 있다. 프라하의 메인 버스터미널인 플로렌치 터미널에서 스튜던트 에이전시 버스로 가는 게 가장 편리하다. 매시간 적어도 한 두 차례 카를로비바리행 직행버스가 출발한다. 또 카를로비 바리에서 플젠으로 향하는 직행버스도 운행한다. 아우토부시 카를로비Autobusy Karlovy 버스회사에서는 하루 두 편 정도 직행버스를 운행한다.(1시간47분 소요)


카를로비 바리에는 기차역이 두 데 있다. 하나는 강 위쪽에 위치한 호르니 역 Horní Nádraží(upper station)역이고 다른 하나는 돌니 역 Dolní Nádraží 역이다. 기차의 경우 프라하 중앙역에서 돌니 역까지 3시간17분 소요된다.


*플젠
스튜던트 에이전시 버스는 프라하의 메인 버스터미널인 플로렌츠 터미널 또는 즐리친Zličín 역(무스테크 역에서 메트로 B라인으로 약18분 소요) 앞 즐리친 버스터미널에서 매시간마다 플젠행직행버스를 운행한다(1시간 소요). 기차의 경우 프라하 중앙역에서 매시간 플젠까지 직행 열차를 운행한다.(1시간 35분 소요)


2. 플젠 브루어리 투어

플젠 중앙역에서 북쪽으로 약 400미터 떨어져 있다. 도보로 10분 소요된다.


3. 비자

대한민국 여권소지자는 관광목적으로 비자없이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4. 환전

체코 화폐 단위는 코루나(CZK)이며 1코루나는 현재 한화로 약 45원이다.


5. 여행시즌

카를로비 바리는 산책로가 많아 단풍이 붉게 물드는 가을철에 방문하기가 가장 좋다. 7월 전후로는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