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타이완은 여행자들에게 뜨겁다.
하지만 타이페이와 그 근교만을 목적으로 삼는 여행이라면 그건 너무 아쉽다. 타이완을 애정하는 이들은 첫손가락으로 중남부 지역을 꼽는다. 남부의 타이난과 중부의 타이중을 다니며 그 이유를 새삼 확인했다.
타이페이를 출발한 후 1시간 50분,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 고속열차HSR는 천천히 타이난역에 들어섰다. 소요시간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시계에 저절로 눈이 갔다. '심정적으로'는 예상보다 빠르게 도착한 것만 같아서이다. 같은 루트를 자동차로 이동했던 몇 년 전, 꽤 멀게만 느껴졌던 타이난이 실은 이렇게나 가까웠다.
역을 나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 차창 밖의 풍경은 변함이 없었다. 붐비지 않는 도로, 낡고 낮은 건물들, 비가 내리기 전의 하늘 같은 회색빛 분위기. 다행이었다. 골목마다 역사가 깃들어 있는 이 도시가 변하는 것은, 소중한 추억이 사라져 버리는 것만큼 서글픈 일일 테니까. 타이난은 역사 도시다. 우리의 경주와 같다.
과거의 유산과 흔적이 이 도시의 곳곳에서 불쑥불쑥 나타난다. 타이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평판과 함께 타이난의 역사가 곧 타이완의 역사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적인 장소가 주는 선입견, 이를테면 문화재가 전부인 도시로 타이난을 재단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매력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 떠나기에 앞서 아쉬운 한숨이 가장 크게 터져 나오는 곳이라고나 할까.
타이페이의 화산 1914 창의 문화원이나 송산문화창조단지, 가오슝의 보얼예술특구. 이 장소들의 공통점은 버려진 공장이나 창고를 ‘예술의 힘’을 빌어 멋진 관광지로 탈바꿈시켰다는 거다. 이를 통해 버려질 것을 버리지 않고 잘 활용하는 타이완 사람들의 지혜에 감탄하곤 한다. 타이난에서 찾은 ‘텐드럼 컬쳐 빌리지’ 또한 그렇다. 2차 대전을 거치며 폐허가 된 사탕 공장을 예술인들이 멋진 문화공간으로 변신시켰다.
이곳에 들어서면 우선 넓은 면적에 한번, 그런데도 공간을 깨알같이 잘 활용한 아이디어에 두 번 놀라게 된다. 특히 공장의 여러 시설을 적극적으로 개선해 재미 만점의 어트랙션이나, 카페나 식당 같은 편의시설을 만들어 놓은 부분에서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시간에 맞춰 펼쳐지는 북 공연은 이 곳의 백미로 놓치면 아쉽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역동적인 퍼포먼스와 박력 넘치는 음색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단지 예술인들만의 힘으로 이 넓은 부지를 개발 하다 보니 자금에 대한 압박도 있었고, 사업적으로도 아직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운 원칙은 철저하게 지켜나갈 겁니다. 그것은 바로 ‘감소’는 없다는 겁니다. 이 시설 안의 어떤 것이 효용 가치를 다해도 절대 버리는 일은 없을 거예요. 편의성을 위해 현재의 디자인에 무엇인가를 더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모습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을 겁니다. 물건에도 생명이 있고, 그렇기에 지켜줘야만 하니까요” 텐드럼 컬처빌리지의 부단장인 ‘양유웬楊有文’씨가 힘주어 말했다. 바람직한 철학이다. 그의 말이 지켜만 진다면 텐드럼 컬쳐빌리지의 장래는 무척 밝을 것 같다. 건승이 함께 하길!
홍수림紅樹林이라고도 불리는 아열대성 식생 맹그로브mangrove, 대개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자란다. 타이난에서도 이 맹그로브 군락을 만날 수 있다고 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들렀다. ‘쓰차오 녹색 터널’이다. 역사적 관광지가 많은 타이난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이색적인 장소로 이름 높다. 이곳을 탐험하기 위해서는 작은 배를 타야만 한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제일 앞자리에 앉는 편이 좋지만, 배에 오른 사람들 대부분이 같은 마음이기에 선두를 차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배가 출발하고 얼마 후부터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와~!’ 높고 길게 자란 맹그로브 군락이 터널을 이룬 모습, 황홀하다. 때마침 내린 비로 샤워를 끝낸 맹그로브 잎들은 충만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초록빛으로 수면을 물들였다. 타이난 최고의 비경이라는 소문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장면이다. 정말 멋진 풍경을 접했을 때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를 몽땅 사용해 주고 싶을 만큼.
앞서 말한 대로 타이난은 ‘과거’라는 단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래서 이곳에 산재한 과거의 유산들을 찾아 나서는 여행은 이 도시를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옳은 방법이다. 굳이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다. '안핑지구安平地區'라는 지름길이 있기 때문이다. 안핑은 타이난의 자랑하는 핵심적인 유적들이 몰려있는 곳이다.
그 가운데 네덜란드가 세운 요새이자, 타이완 역사의 자존심이라는 '명장 정성공'의 일화가 얽혀있는 '안핑구바오安平古堡'가 대표적이다. 과거 영국인이 설립한 5대 무역회사 중 하나인 ‘더지양항德記洋行’도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 유적의 부지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안핑수우安平樹屋' 때문이다. 과거 더지양항의 창고였던 안핑수우는 일본강점기 소금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훗날 이 지역의 소금산업이 쇠퇴하며 오랜 세월 방치되었지만, 이 창고를 버리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반얀트리'다. 낡고 헐어버린 건물 전체를 이 나무가 감싸고 있는 모습은 신기하다 못해 기이하기까지 하다. 타이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상업 거리인 ‘옌핑제(延平街)'를 걸어보는 것도 놓치기 아쉽다.
말린 매실을 비롯한 말린 과일이나 맛 좋은 길거리 음식을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어 만족스럽다. 밤이 가까워지면 타이난을 대표하는 건축물인 '츠칸러우'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 타이난을 넘어 타이완의 역사를 오롯이 품고 있는 사연 많은 건물이지만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은 이와는 관계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내가 알던 타이중이 아니다. 예술과 문화로 도시가 반짝거린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타이페이보다 모던하다. 낡은 골목들에 스타일리시한 가게를 입히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로 무장한 맛집들을 두르니 생기발랄함이 흘러넘친다. 많은 공원에 우거진 녹음, 걷고 싶게 만드는 도시가 전의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걸어야만 하는 도시가 되어 버렸다. 완벽하게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다. 하루가 채 되지 않는 시간을 머물렀을 뿐인데도 이런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이토토요(伊東豊雄)’가 설계한 ‘타이중 국가가극원’의 독특하고 임팩트 있는 모습, 가로수 길을 기억하게 하는 ‘범특희미창문화范特喜微創文化’골목의 소소한 매력, 괴물 모양의 아이스크림으로 화제를 모으며 줄 서서 먹는 빙수 가게 ‘로지’도 분명히 더 멋진 타이중으로 변신하는 데 일조했을 테다. 어쨌든 분명한 건 난 이 도시와 사랑에 빠졌다는 거다.
한 사람의 그림이 마을을 바꾸다. 무지개마을(彩虹眷村)
그는 철거반대의 뜻을 담아 마을 곳곳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담장, 바닥, 벽면…그가 움직이는 곳마다 새로운 그림들이 마을을 수놓았다. 이런 상황은 곧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전국의 곳곳에 알려졌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철거반대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졌다. 놀란 정부는 재개발 계획을 서둘러 취소했다.
그리고 거꾸로 이 동네를 보존지역으로 지정했다. 무지개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진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해외매스컴에서도 주목했다. 그러면서 황융푸씨와 이 동네는 더욱 유명해졌다, 지금의 무지개마을은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인기여행 스폿이다. 더불어 한 개인의 의지와, 그에 화답한 정부가 모두 승자가 된 화합의 장이다.
하루에 네 끼를 먹는다는 타이완 사람들, 음식에 대한 깐깐함은 말로 할 수 없다. 그런 타이완 사람들도 최고의 맛이라고 인정하는 미식의 고장이 바로 타이난이다. 이에 더해 맵시 있는 음식으로 정평이 난 타이중을 더해서 틀림없는 장소만 여기에 소개해 보도록 한다.
환상적인 맛에 감동의 눈물을 흘릴 뻔한 우육탕. 엄선한 타이난의 소, 그 중에서도 등살만을 사용하는 집이다. 오후에 문을 열어 아침 10시까지 영업한다. 호탕한 가게 주인의 성격도 이 집의 음식만큼 마음을 사로 잡는다.
타이완을 대표하는 외식 업체 ‘왕핀’에서 운영하는 철판요리 레스토랑 ‘샤모니夏募尼’ 최고의 기업이 제안하는 식당답게 맛은 물론 서비스의 질도 비교불가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비해 놀랄 만큼 합리적인 가격 또한 만족스럽다. 서버들의 영어 대응 또한 합격점. 내가 찾은 곳은 왕핀 본사가 자리잡고 있는 타이중의 체인이었다.
소금과 해산물로 정평이 난 치구지역에서 먹은 점심식사. 명불허전이었다. 타이난 시내에서 40분 정도 걸린다.
입맛 까다로운 타이난 사람들도 줄을 서서 먹는 어죽 전문점인 ‘아탕시엔시오’. 대를 이어 영업한지 70년이 넘는다. 주 메뉴는 농어를 재료로 만든 어죽과 농어배구이. 타이난의 유별난 조식문화를 반영하듯 오전 5시부터 정오까지만 영업한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밀레 하우스 아틀리에 박물관 (0) | 2017.07.17 |
---|---|
쿠바의 4성급 리조트 플라야 앙꽁 & 솔 까요 꼬꼬 (0) | 2017.07.15 |
환상적인 홋카이도 삿포로의 미식여행 (0) | 2017.07.15 |
남미의 숨은 관광지 페루 남부해안 (0) | 2017.07.15 |
이탈리아 토스카나 힐링 여행 (0) | 2017.07.13 |